(석현동) (우 57922)
도심속 순천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의 공간으로 알려진 사찰이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도심과 거리를 둔 산사에 위치하고 있으나, 향림사는 시민들이 매일 접할 수 있는 시내권역에 위치한다. 향림사에는 약수물이 나오는 향림정(香林井)이 있어 주변 사람들은 매일 약수물을 받아가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향림사의 원래 위치는 비봉산 중턱의 마애불이 위치한 곳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석축으로 보이는 달담과 기와, 약수터의 흔적 등이 있다. 향림사의 창건에 대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1853년 이기성이 기록한 향림사중창기(현재 대웅전 좌측의 요사채에 있음)에 의하면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년)가 기거했던 곳이라 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다른 문헌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또한 조선후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신빈성이 매우 빈약하다. 다만 대웅전앞에 있는 석탑 2기와 향림사 뒷산 중턱에 있는 마애불의 양식을 통해 볼 때 고려시대 후반기에는 향림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 주변으로 작설차 밭이 있고, 향기로운 숲이 있어 향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산사에 위치하고 있지만 향림사는 시내권역에 위치한 도심 속 순천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같은 사찰로 접근성이 좋다. 향림사 초입에 산책과 운동을 할 수 있는 힐링 공원이 있고, 사찰 주변으로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 서어나무, 푸조나무, 은행나무 등 몇백 년 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가을 꽃무릇으로 유명한 사찰답게 향림사 주변과 공원에 붉은 꽃무릇이 무성하다. * 창건배경 및 역사 여천군 화양면 용주리 1595번지 비봉산 중턱에 자리한 이절은 천년고찰임이 분명한 듯하나 창건에 관한 확실한 기록이 없어 단언할 수 없다. 이 절의 유일한 기문(記文)인 노석기(魯晳璣)의 ''용문암중수서(龍門庵重修序)''에는 그저 신라때(新羅甲子肇?)에 창건되었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이 절의 안내판에는“신라 692년(효소왕 원년) 당나라 고승 도증법사(道證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 후의 사실은“1761년(영조 37)과 1846년(헌종 12)에 각각 중수했다”고 위 ''용문암중수서''에 나와 있으나 초창과 더불어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이 절의 창건 역사와 그 후의 사실은 분명한 것이 없다. 이 절이 문헌상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일제강점기 태고사 사법(太古寺寺法)에 의해서다.“여수군 화양면 용문산 대본사 선암사 말사”라 한 것으로 보아 1911년 6월 사찰령이 제정ㆍ반포된 이후 승주 선암사에 소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914년 비구 경담(景潭)에 의해 이 절의 역사는 비로소 분명해진다. 그는 동지 20~30인과 함께 대시주 이기열(李基烈)과 화양면민들의 도움으로 지금‘용문암(龍門庵)’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작은 인법당을 건립하였다. 그래서 이 절에서는 지금까지도 삼성각 왼쪽 벽에 부인 김씨와 함께 앉아있는 이기열의 진영을 모셔놓고 향화(香火)를 받들고 있다. 그 후 1962년 10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 말사로 등록하고, 1964년 2월 주지로 부임하여 26년간 중창불사를 한 혜월(慧月, 1925~1989) 스님에 의해 사세가 더욱 확장되었다. 그는 법당중수는 물론 화양면 사무소의 건물을 옮겨와 관음전을 짓고 칠성각ㆍ요사채를 새로 건립하였으며, 1981년 11월에는 범종을 주조하고, 1988년에는 종각을 세워 절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그리고 경내의 전기시설과 전화를 가설하고 진입로를 확장하는 등의 대대적인 불사는 모두 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 이 절을 맡게 된 종걸(宗乞) 스님에 의해 1991년부터 1999년까지 9년간의 불사로 재도약을 시도해 왔다. 1999년 2월에 부임한 현재의 주지 성문(聖門)스님에 의해 불사는 계속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가. 통일신라시대 사찰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현재 대웅전 좌측에 걸려있는 향림사중수기(香林寺重修記, 1853년)의 현판에 의하면 玉龍禪師(도선국사, 827~898년)가 탁석한 장소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다른 문헌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또한 조선후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매우 빈약하다. 나.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향림사에 대한 기록도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 2기 와 향림사 뒤편 계곡의 중턱에 있는 마애불은 고려시대의 유물이 전하고 있다. 이로 볼 때 향림사는 고려시대 후반기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16세기 까지는 향림사에 관한 기록은 없다. 1618년(광해군10) 이수광에 의해 편찬된 ''승평지'' 사찰기를 보면 ‘향림사(香林寺), 月出庵(월출암), 高峯庵(고봉암), 上林寺(상람사)의 4개 사찰이 현재는 폐사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年刊)에도 寺名이 보이지 않다가 처음으로 ''승평지''에 ‘지금은 폐찰되었다’라고 한 점으로 보아 1530년 이전 어느 때 폐찰되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편, 1729년(영조5)에 편찬된 ''중간승평지(重刊昇平志)'' 사찰조에 순천읍인들의 재력으로 순천읍의 진압사찰로 중창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1898年에 간행된 ''승평속지(昇平續誌)''에 실려있는 문인들의 詩에 향림사가 계속 보인 점으로 보아 향림사는 1724年 중창된 이후 계속 법등을 이어오다가 1853年(香林寺 重修記)에 다시 부사(府使)를 비롯한 지방관리들과 승려, 불량설원(佛糧楔員)인 일반 시주자들에 의해 중수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862年에는 천수다리니경 목각판이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1966년 11월에 이르러 대웅전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보수를 하였던 것으로 알겨지고 있으나 어느 위치에서 현위치로 옮겨 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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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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