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38334)
죽림사를 가려면 탐스러운 감과 복숭아 마을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도에서 화양읍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난 신봉리 방면 도로로 접어들면 죽림사 표지판이 참배객을 기다리는데,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붉은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린 과수원을 끼고 30분 정도 더 들어가야 죽림사가 있다. 죽림사를 오르는 길은 봄이면 계곡 따라 산 전체가 복사꽃으로 장관을 이루고 굽이도는 비탈길에 달빛이라도 흘러내리는 밤이면 붉고 흰 복숭아의 꽃잎이 여인네의 살결같이 아름답다. 또한 청도를 지나는 모든 국도와 지방도는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길의 연속이다. 늦가을이면 잎 다 떨어진 나무에 매달려 있는 붉은 감들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청도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렇게 천년 고찰 죽림사를 찾아가는 길은 마음까지 설레인다.
신봉리 남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죽림사는 원래 화남사라 하여 610년(신라 진평왕 32년)에 법정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그 당시 법정대사는 이 절을 창간한 후 선덕여왕의 명을 받아 불교 포교의 화친사로 일본에 건너가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왕은 그 충성을 갸륵하게 여기고 왕명으로 이 절 옆의 땅 약 900여 결을 하사하고 대나무를 심게 하였다. 그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사찰이 대나무 숲 속에 있게 되자 절 이름을 죽림사라 개칭하고, 절의 전성시대를 이루게 되었다. 그 뒤 허물어진 사찰을 고려 명종 때 왕사였던 보조국사가 중건하였고, 조선조 태조 때는 무학대사가 중수하였다 한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의 병화로 대웅전과 명부전이 불타 없어지고 보광전만 남은 것을 승려들이 인덕당을 새로 건립하였다. 근래에 이르러 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토록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보광전, 칠성각, 산령각, 요사 등이 약간의 전답과 함께 남아 있다. 유서 깊은 큰 대나무 밭은 오랜 세월의 변천으로 없어지고 지금은 대나무 수십 그루만 남아 있어 옛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근래에 절의 축대를 새로 쌓고 법당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 창건배경 및 역사 *
죽림사는 610년(신라 진평왕 32) 법정 대사가 화남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법정 대사는 창건 후 선덕왕의 명을 받아 화친사(和親使)로 일본에 건너가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왕은 노고에 대한 답례로 왕명으로 이 절 옆의 땅 약 900여 결(結)을 하사하였는데, 그 때 심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지금처럼 죽림사라고 하였다 한다. 하지만 죽림사는 인도 최초의 사원으로, 마가다국의 왕 빔비라사가 불교 교단에 기증한 죽림정사(竹林精舍)의 고사에서 유래되었을 수도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보조 국사 지눌(知訥)이 중창하였다. 조선에서는 태조 때 무학 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의 병화로 대웅전과 명부전이 불타 없어지고 보광전만 남은 것을 전쟁 후에 인덕당을 새로 건립하였다. 최근에는 1992년 산령각과 요사인 견을당, 1993년 대웅전을 새로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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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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