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59132)
묘당도는 고금도에 딸린 섬으로 그 거리는 20리 안팎이다.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1598년(선조 31) 2월 17일 충무공 이순신이 수군 8,000여 명을 거느리고 고하도(현 목포시 충무동)로부터 이곳에 옮겨 진을 쳤고, 그해 7월 16일에는 명의 원병으로 진린 장군이 5천 명의 수군을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해 관왕묘를 세우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으며 연합전선을 펴 왜적의 침략을 막아냈던 유적이다. 특히, 이곳은 해수로의 요새지로서 이충무공이 고금도에 진을 옮긴 뒤부터는 장흥, 고흥 등에 출몰하여 살육과 약탈을 일삼던 왜군이 순천 방면으로 도주해 버림으로 전투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공은 이때 우선 본영을 건설하고 피난민들을 거두는 일 등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공이 고금도에 이르렀을 때는 군의 위세도 장했거니와 섬 안의 민간인도 수만 호에 달해 한산도 시절의 10배나 되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해 9월 15일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진린의 명나라 수군이 연합하여 순천 수교 (왜교)에 침몰한 왜적을 소탕하고, 다시 10월 9일에는 고금도로 돌아와 전열을 재정비하였다가 11월 9일에는 함대가 노량을 향하여 출진하여 충무공이 11월 19일(양력으로는 12월 16일) 아침, 54 세를 일기로 순국하여 이곳으로 유해를 88일간 봉안하였다가 그 이듬해 1599년(선조 32년) 2월 11일 정식으로 발인, 고향인 충남 아산의 묘역으로 옮겼다. 아직도 이 터에서는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명나라 수장은 장군의 전사를 애석히 여겨 이곳에 서혈하고 귀국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관왕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충무사로 명칭을 변경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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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출처 ]
공공데이터포털
한국관광공사